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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군사반란 (서울의 봄)

by 티롤의삶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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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죽음과 이후에 다시 불어닥친 군사반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잠시나마 피어났던 '서울의 봄'! 이러한 과정은 어떠한 배경 속에서 일어난 일들일까요? "과거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제대로 알고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프지만, 엄연한 역사인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212군사반란
1212군사반란과 서울의 봄

 

목차

  • 서울의 봄
  • 1212 군사반란
  • 하나회

 

 

▒ 서울의 봄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최측근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위 총에 의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대통령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사망합니다. 이 일로 18년간의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고, 이후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서울의 봄(1979.10.26~1980.5)'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끝내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 1212 군사반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투스타 장군이었던 전두환이, 군내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 '1212 군사반란(1979.12.12)'이라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권력이 집중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우선 권력의 1인자인 대통령이 사망하고, 민간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 수장인 김재규는 당사자로 체포가 되니, 결국에는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령부만이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정부)과 민간의 모든 권력이 공석인 상태에서, 군 권력만이 남으니, 모든 권력은 군 권력인 보안사령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보안사령관이 바로 전두환이었던 것입니다. 권력의 최상부에 오른 전두환은 군내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 하나회
하나회는, 육군군사학교 11기생들이 주축을 이룬 장교모임으로써, 노태우, 전두환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엘리트 의식이 유난히 강했던 기수로써, 이전까지는 6개월, 1년 등 단기훈련학교였던 육군사관학교가, 11기부터 4년제가 되면서, 엘리트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내의 사조직은 불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묵인했다고 전해지는데, 같은 영남출신들이 많았고, 그래서 자신의 친위대로 육성하려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반란에 성공한 전두환은, 이후에 반대파였던,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육사 5기)를 체포하여 '내란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4성 장군에서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불명예제대를 시켰으며, 수경사령관 장태완과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강제전역을 시켰으며, 그 자리에 하나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군부인 '신군부'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1980년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이 되고, 12대 대통령까지 자리하게 됩니다.

 

 

전두환은, 결국에 대한민국의 역사에 여러 가지로 흑역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갈 때까지 아무런 사과도,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떠났습니다. 가장 분한 것은 그가 천수(天:하늘 천, 壽:목숨 수)를 누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1212 군사반란 (서울의 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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