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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이란? (원인, 배경 그리고 이후)

by 티롤의삶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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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타도", "유신철폐"를 외쳤던, 부마민주항쟁을 아시나요? 지금의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노력과 피가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피가 있었던 장소가 부산과 마산지역에 있었던 민주항쟁이었고, 이를 부마민주항쟁이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부마민주항쟁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이후에 대해서 다루고자 합니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 알아보자!
부마민주항쟁을 알아보자

 

목차

▣ 부마민주항쟁
   ▶ 부마민주항쟁 원인. 배경
   ▶ 부마민주항쟁 마무리
   ▶ 부마민주항쟁 이후

 

 

▣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있었던 유신독재 반대를 외친 민주 항쟁 사건을 말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4.19 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4대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 부마민주항쟁 원인. 배경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원인이 된 2개의 사건을 아셔야 합니다.

YH무역사건

1979년 8월, YH무역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 들어가 부당폐업 등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자 경찰이 야당 당사인 신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적으로 진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게 된 사건입니다.

김영삼 의원직 제명

1979년 9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유신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말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김영삼 의원은, 총재직 정지와 의원직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

 

 

이 2개의 사건은 결국에는, 당시 공업단지였고, 김영삼 의원의 텃밭이었던, 부산시민들의 공분을 사게 되고, 이러한 공분은 부산을 거쳐, 마산에까지 번지게 되고, 결국에는 부산과 마산(부마)의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부마민주항쟁'이라고 합니다.

 

▶ 부마민주항쟁 마무리

이렇게 부산과 마산 지역의 항쟁이 벌어지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 정부에는 온건파(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강경파(경호실장 차지철)로 나뉘게 되며, 사태파악을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부산지역으로 내려보내게 됩니다.

김재규가 본 부산과 마산의 모습은, 단순히 야당의 선동과 조작이 아닌, 유신체제에 대한 민심이 돌아 선 것임을 알고, 곧바로 보고를 합니다. 하지만 강경파에서는 군대의 투입과 탱크까지를 거론하며,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강경파 쪽으로 기울게 되고, 김재규는 사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게 되고, 이대로라면 더 큰 일로 벌지게 될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되고, 결국,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박정희 대통령과 강경파였던 경호실장 차지철을 저격하게 되며, 부마민주항쟁은 마무리가 됩니다.

 

 

▶ 부마민주항쟁 이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정권 내부로부터 유신체제에 대한 갈등이 생기게 되었고, 결국,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기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이 부마민주항쟁 현장에 공수부대를 출동시켰으며,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은 부산과 마산지역의 진압작전 계획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2019년 부마민주항쟁은, 40년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이름모를 분들을 기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부마민주항쟁 이란? (원인, 배경 그리고 이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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